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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와카레지장 (お別れ地蔵) 의 제단

  사형수가 저승으로 떠나기 직전에 그들을 배웅했다고 하는 츠보이지장 (壺井地蔵) 처럼 교토에는 당시 같은 역할을 했다고 전해져 오는 지장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와카레지죠(お別れ地蔵) 인데 ‘이별의 지장’ 이라는 뜻으로 이름처럼 왠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 오와카레지장은 가미야쵸 (紙屋町) 라는 동네에 있는데 이마데가와대로 (今出川大通) 를 끼고 기타노텐만구 (北野天満宮) 신사 건너편에 모셔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장은 언제나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어서 상자 앞에 세워져 있는 사진으로만 만족해야 하니   유감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 지장은 원래 지금의 후쿠이현 (福井県)에 있는 와카사 (若狭) 라는 지방에 모셔져 있었는데 메이지시대 (明治時代) (1868-1912) 초에 그곳에서는 하이부츠키샤쿠 (廃仏毀釈) 라는 반불교 운동이 시작되어서 순식간에 바로 온 마을로 퍼졌다고 합니다.

  에도시대 (江戸時代) (1603-1867) 부터 절은 민중을 관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시청 대신에 호적을 다루었고, 학교 대신에 젊은이들에게 읽기도 쓰기도 주판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절은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 (神道) 의 신사와 평화롭게 공존해  왔습니다.

  하지만 메이지시대 초에 일본정부가 신도를 국교로 지정하게 되면서 신도가 일본 고유의 종교, 불교는 외국에서 온 종교라는  차별이  시작되었습니다. 점점 불교를 의심스럽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불교용품이나 불상, 심지어 법당을 파괴하는 사람까지 나타났습니다. 그런 사회동향을 하이부츠키샤쿠 즉 ‘불교를 폐지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거절하는 것’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지장을 구하기 위해 한 노승이 지장을 짊어지고 교토를 향해 먼 길을 떠났지만 가미야쵸에 다다랐을 때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길가에 내버려진 지장을 그냥 둘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이 지장을 위해 작은 사당을 지었습니다.

나무 상자 안의 오와카레지장 (お別れ地蔵) 을 볼 수 없고 아미타불 (阿弥陀仏) 은 볼 수 있다

  마침 그 사당 근처에 큰 화장터가 있었기 때문에 장례 행렬이 그 지장 앞을 자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유족들은 지장 앞에 멈춰서서 죽은자에게 작별을 고했고 그에게 저승으로 가는 길을 지켜 달라고 빌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지장은 여행자를 지키는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입구에 서서 여행자를 배웅하거나 마중하고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지켜준다고 믿습니다. 게다가 죽은자가 저승을 향해 마지막 여행을 떠날 때도 지장은 함께 해 준다고도 믿습니다. 화장터 근처에서 죽은 노승에 의해 지장이 그 역할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오와카레지장 (お別れ地蔵) 의 제단 옆에 있는 두부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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