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어떻게 하면 민중을 구할 수 있을까? (法然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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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라쿠지 (安楽寺) 에서 약 200 m 쯤 북쪽에는 초가지붕 입구가 인상적인 절이 있습니다. 그 절은 정토종 (浄土宗) 의 창시자인 호넨 (法然) 의 이름에서 따와 호넨인 (法然院) 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호넨은 옛날에 그곳에 있었던 염불도장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개최했는데 하루에 두 번 오전 6시, 오후 6 시에 신자들이 그 도장에 모여 아미타불 앞에서 같이 불경을 외었다고 합니다. 그 모임으로 호넨은 정토종을 전국으로 포교하려고 했습니다만 머지않아 보수적인 종파의 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습니다.
99. 안라쿠지 (安楽寺) 에 얽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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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카와대로 (白川通) 에 있는 신뇨도마에 (真如堂前)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데츠가쿠노미치 (哲学の道) 라는 산책길에 다다르는데 그곳에서 동쪽으로 약 200 m 쯤 더 가면 시시가타니 (鹿ケ谷) 라는 구역이 나옵니다. 그곳 남쪽에 노틀담 (Notre Dame) 이라는 학교가 있고 북쪽에는 레이간지 (霊鑑寺) 와 안라쿠지 (安楽寺) 라는 두 절이 남북으로 나란히 서 있습니다. 안라쿠지는 안라쿠라는 승려의 이름에서 따와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마쿠라시대 (鎌倉時代) (1185-1333) 에 호넨 (法然) 이라는 승려가 죠도슈 (浄土宗) 즉 정토종을 창설했는데 그 종파의 교의에 따르면 누구라도 매일 아미타불 (阿弥陀仏) 을 마음에 모시고 "나무아미타불" 즉 "저는 아미타불에 완전히 귀의하겠습니다." 라고 외면 죽어서도 정토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정토신앙은 그때까지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지만 옛도읍 나라 (奈良) 의 도다이지 (東大寺) 나 고후쿠지 (興福寺) 나 히에이산 (比叡山) 정상에 있는 엔랴쿠지 (延暦寺) 같은 보수적인 옛종파들은 그 새로운 흐름을 적대시해서 당시의 권력자였던 고토바상황 (後鳥羽上皇) 에게 정토종을 금지시켜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호넨의 제자인 쥬렌 (住蓮) 과 안라쿠 (安楽) 는 정토종을 포교하기 위해 시시가타니에 있는 염불도장 (念仏道場) 에서 모임을 개최했습니다. 당시 고토바상황의 궁녀들 중에 19살 마츠무시 (松虫) 와 17살 스즈무시 (鈴虫) 라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영리했기 때문에 상황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주위의 궁녀들에게 심하게 질투와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상황은 지금의 와카야마현 (和歌山県) 에 있는 구마노산샤 (熊野三社) 라는 세 곳의 신사를 순례하기 위해 궁전을 떠나 있었습니다. 상황이 외출한 틈을 타 자매는 호넨의 설교를 들으러 기요미즈절 (清水寺) 을 방문했습니다. 둘은 호넨의 정토신앙에 아주 감동해서 여승이 되기로 결심하고 밤 늦게 궁을 빠져나가 시시가타니의 염불도장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들의 진지한 태도에 두 승려는 압도되어 쥬렌은 마츠무시의, 안라쿠는 스즈무시의 머리를 깎고 말았습니다.
며칠 뒤 순례에서 돌아온 상황은 사랑하던 그녀들이 여승이 되어 있어서, 그것이 쥬렌과 안라쿠의 짓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옛종파의 요구를 구실로 정토종을 금지했습니다. 호넨은 지금의 고치현 (高知県) 인 도사 (土佐) 로 귀양 보내졌고 쥬렌은 지금의 시가현 (滋賀県) 인 오미 (近江) 에서, 안라쿠는 교토 (京都) 에서 참수되었습니다. 마츠무시와 스즈무시 자매는 세토나이카이 (瀬戸内海) 에 있는 작은 섬에서 여생을 보냈고 각각 36살과 45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후 시시가타니의 염불도장은 폐허가 되었지만 호넨은 4 년간의 귀양에서 돌아와 그곳에 다시 절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안라쿠지입니다. 그 절 경내에는 마츠무시와 스즈무시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쥬렌과 안라쿠의 묘도 쓸쓸히 서 있는데 기념비에는 세상을 떠나기 앞서 남긴다는 사세구 (辞世句) 가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열반으로 간다는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제 운명을 모두 아미타불께 맡기겠습니다. (쥬렌)
-저는 작별 인사로 "나무아미타불" 이외에 아무말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안라쿠)
96.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떨어지기 마련이다.(大徳寺高桐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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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지하철 가라스마 (烏丸) 선 기타오지 (北大路) 역에서 지상으로 나가면 가라스마-기타오지 (烏丸北大路) 라는 교차로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기타오지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1 km 쯤 가면 오른쪽에 다이토쿠지 (大徳寺) 라는 선종절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보통 일본에서 선종절은 ~지 (~寺) 라고 불리지만 그 경내의 건물은 ~인 (~院) 이라고 불립니다. 다이토쿠지의 넓은 경내 안 서쪽에 고토인 (高桐院) 이 서 있습니다.
95. 번창신사 (繫昌神社) 의 두 가지 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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뵤도지 (平等寺) 의 별칭 이나바야쿠시 (稲葉薬師) 로 가는 도중에 지나가는 가라스마-다카츠지 (烏丸高辻) 라는 교차로에서 약 150 m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무로마치-다카츠지 (室町高辻) 라는 교차로가 있는데 그곳에서 약50 m 더 서쪽으로 가면 작은 신사가 남쪽을 향해 서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신사를 "한죠 진자 (繁盛神社)" 라고 부르는데 "번창 신사" 라는 의미입니다. 왜 그렇게 불리게 됐는지에 관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94. 돗토리 에서 온 야쿠시 (因幡薬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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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지하철 가라스마 (烏丸)선 시죠 (四条)역의 남쪽 출구에서 약 100 m 떨어진 곳에 가라스마-다카츠지 (烏丸高辻) 라는 교차로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50 m 쯤 더 가면 왼쪽으로 뻗어 있는 길이 있는데 그 길로 들어가면 정면에 뵤도지 (平等寺) 라는 절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뵤도지를 친밀하게 "이나바 야쿠시 (因幡薬師)"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나바" 는 지금의 돗토리 (鳥取)현에 해당되는 지방의 이름이며 "야쿠시" 는 가장 높은 깨달음에 도달한 불교의 신인데 신자들을 여러 가지 병으로부터 지켜 준다고 합니다. 야쿠시는 치유 능력의 증거로 언제나 왼손에 약이 들어 있는 단지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돗토리현에 있어야 할 야쿠시가 교토의 뵤도지에 모셔져 있을까요?
89. 돌아오게 하는 다리(晴明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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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지하철 가라스마선 (烏丸線) 의 이마데가와역 (今出川駅) 에서 약 800 m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호리카와이마데가와 (堀川今出川) 라는 교차로가 있고, 그 남서쪽 모퉁이에는 니시진오리 (西陣織) 라는 직물 판매를 위해 세워진 니시진오리회관 (西陣織会館) 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조금 남쪽으로 아베노-세이메이 (安倍晴明) 를 모시고 있는 세이메이신사 (晴明神社) 가 오른쪽에 있습니다.
87. 몇 번이나 자신의 관을 준비한 여자(神光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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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가모샤코마에 (西賀茂車庫前) 라는 버스 정류장에서 약 500 m 쯤 남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진코인 (神光院) 이라는 절이 있습니다. 그 절은 서기 1217년에 지금도 유명한 가미가모진자 (上賀茂神社) 라는 신사의 한 신관이 신의 소리를 듣고 근처에 세웠다고 합니다. "신성한 빛이 나는 곳에 절을 세워라!" 진코인이 있는 곳이 바로 옛날 가와라야데라 (瓦屋寺) 라는 절이 있었던 장소이기 때문에 그 신관의 눈에는 빛이 나는 듯 보였다고 합니다.
정문에서 경내 왼쪽에 렌게츠안 (蓮月庵) 이라는 다실 (茶室) 이 있습니다. 렌게츠 (連月) 는 에도시대 (江戸時代) 말기 (1791년) 부터 메이지시대 (明治時代) 초기 (1875년) 까지 교토에서 살았던 오타가키 렌게츠 (太田垣 蓮月) 라는 여성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녀를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기구한 생애를 피부로 느껴 보고자 그 다실을 방문합니다.
86. 괴물의 고백 (三条大将軍神社 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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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지하철 도자이선 (京都地下鉄東西線) 의 히가시야마역 (東山駅) 에서 약 150 m 서쪽에 히가시야마산죠 (東山三条) 라는 교차로가 있고 그곳에서 서쪽으로 약 150 m 왼쪽에는 남쪽으로 뻗어 있는 좁은 길의 입구가 있는데, 그 길 약 100 m 오른쪽에 다이쇼군진자 (大将軍神社) 의 입구인 도리이 (鳥居) 가 있습니다.
그 신사는 헤이안시대 (平安時代) (794-1185) 초기에 악령이 교토시내에 침입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동서남북에 세워진 4 개의 다이쇼군진자 중 하나입니다. 경내에 서 있는 800 년이 넘는 큰 은행나무를 보면 그 신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그리고 예전에는 그 주변이 숲이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곳에는 누에노모리 (鵺の森) 즉 누에라는 괴물의 숲이 있었습니다.
83. 네 명의 여자와 장군 (祇王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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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시대 (昭和時代) (1926-1989) 에 들어 오조인 (往生院) 이 있었던 곳에 재건된 절은 다키구치데라 (滝口寺) 뿐만 아니라 기오지 (祇王寺) 도 있습니다. 기오지는 그 근처에 암자를 지어 비구니로서 생애를 보낸 기오 (祇王) 라는 여성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
기오는 헤이안시대 (平安時代) (794-1185) 에 지금의 시가현 (滋賀県) 인 오미 (近江) 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젊었을 때 어머니 도지 (刀自) 하고 여동생 기뇨 (祇女) 와 같이 교토로 왔습니다. 그곳에서 기오와 기뇨 자매는 시라뵤시 (白拍子) 가 되었는데, 시라뵤시는 남자 분장을 하고 와카 (和歌) 라는 일본 고유 정형시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여자입니다.
71. 천사를 찌른 절대 지배자 (五条天神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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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바라도소신사 (松原道祖神社) 가 있는 마츠바라신마치 (松原新町) 교차로에서 서쪽으로 약 150 m 에는 마츠바라도리 (松原通) 가 니시토인도리 (西洞院通) 와 교차하고 있는데, 그 사거리 남서쪽에는 고죠텐진구 (五条天神宮) 라는 신사가 있습니다.
그 신사의 경내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고층빌딩에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아주 작아 보이지만, 교토로 천도된 시대에 그 신사가 고승 구카이 (空海) 에 의해 창설되었을 당시에는 광대했다고 합니다.
고죠텐진구에 모셔져 있는 세 명의 신들은 오나무치노미코토 (大己貴命), 스쿠나히코나노미코토 (少彦名命) 그리고 아마테라스노오미카미 (天照大神) 인데, 그들은 모두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신이라서 사람들은 그 신사를 ‘덴시노미야’ (天使の宮) 즉 ‘천사의 신사’ 라고 불립니다.
68. 누에콩을 지장에게 바친 원숭이 (空豆地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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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는 특히 지장보살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마음에 드는 불상이라면 어떤 불상이든 ‘~지장’ 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 유래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이야기 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게이한전철 (京阪電鉄) 시치죠역 (七條駅) 에서 내려 시치죠대로 (七条通) 를 따라 동쪽으로 약 100m 가면, 북쪽으로 다이코쿠유 (大黒湯) 라고 하는 소박한 대중 목욕탕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목욕탕 부지에는 지장 하나가 꼼꼼하게 장식된 불당 안에 묘셔져 있습니다.
60. 귀신이 여신이 되다 (橋姫神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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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한전철 (京阪電鉄) 우지선 (宇治線) 의 종점인 우지역 (宇治駅) 에는 우지강 (宇治川) 에 걸쳐 있는 크고 훌륭한 우지다리 (宇治橋) 가 눈길을 끕니다. 그 다리를 건너면 첫번째 교차로에 아가타신사 (縣神社) 의 입구인 기둥문이 있는데 국도 3호선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기둥문에서 약 100 m 왼쪽으로 하시히메신사 (橋姫神社) 의 작은 경내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하시히메 (橋姫) 와 스미요시 (住吉) 라는 신들이 각각 사당 안에 모셔져 있는데 둘 다 물에 관한 신이라 합니다. 하시히메는 강을 지배하는 여신이고, 스미요시는 바다를 지배하는 신인데 그 중 하시히메에 관해 두 개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33. 직녀와 종 (報恩寺 撞かずの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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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지하철 이마데가와역 (今出川駅) 에서 내려 이마데가와길 (今出川通) 을 따라 서쪽으로 잠시 걸어가면 교토를 대표하는 직물인 니시진오리 (西陣織) 로 유명한 니시진 (西陣) 이라는 지역이 시작됩니다. 옛날에 그곳에는 절이나 신사 옆에 직물을 짜던 곳들이 많이 있어서 직물을 짜는 직녀 (織女) 들이나 남자 입문생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니시진에 있는 여러 절들 중의 하나인 호온지 (報恩寺) 에는 헤이안시대 (平安時代) (794-1185) 에 주조된 종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종을 츠카즈노카네 (撞かずの鐘) 즉 치지 않는 종이라고 부릅니다. 에도시대 (江戸時代) (1603-1867) 에는 니시진 지역에서 사람들이 일을 시작하거나 끝내는 시간을 그 호온지의 종소리로 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