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카와대로 (白川通) 에 있는 신뇨도마에 (真如堂前)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데츠가쿠노미치 (哲学の道) 라는 산책길에 다다르는데 그곳에서 동쪽으로 약 200 m 쯤 더 가면 시시가타니 (鹿ケ谷) 라는 구역이 나옵니다. 그곳 남쪽에 노틀담 (Notre Dame) 이라는 학교가 있고 북쪽에는 레이간지 (霊鑑寺) 와 안라쿠지 (安楽寺) 라는 두 절이 남북으로 나란히 서 있습니다. 안라쿠지는 안라쿠라는 승려의 이름에서 따와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마쿠라시대 (鎌倉時代) (1185-1333) 에 호넨 (法然) 이라는 승려가 죠도슈 (浄土宗) 즉 정토종을 창설했는데 그 종파의 교의에 따르면 누구라도 매일 아미타불 (阿弥陀仏) 을 마음에 모시고 "나무아미타불" 즉 "저는 아미타불에 완전히 귀의하겠습니다." 라고 외면 죽어서도 정토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정토신앙은 그때까지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지만 옛도읍 나라 (奈良) 의 도다이지 (東大寺) 나 고후쿠지 (興福寺) 나 히에이산 (比叡山) 정상에 있는 엔랴쿠지 (延暦寺) 같은 보수적인 옛종파들은 그 새로운 흐름을 적대시해서 당시의 권력자였던 고토바상황 (後鳥羽上皇) 에게 정토종을 금지시켜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호넨의 제자인 쥬렌 (住蓮) 과 안라쿠 (安楽) 는 정토종을 포교하기 위해 시시가타니에 있는 염불도장 (念仏道場) 에서 모임을 개최했습니다. 당시 고토바상황의 궁녀들 중에 19살 마츠무시 (松虫) 와 17살 스즈무시 (鈴虫) 라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영리했기 때문에 상황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주위의 궁녀들에게 심하게 질투와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상황은 지금의 와카야마현 (和歌山県) 에 있는 구마노산샤 (熊野三社) 라는 세 곳의 신사를 순례하기 위해 궁전을 떠나 있었습니다. 상황이 외출한 틈을 타 자매는 호넨의 설교를 들으러 기요미즈절 (清水寺) 을 방문했습니다. 둘은 호넨의 정토신앙에 아주 감동해서 여승이 되기로 결심하고 밤 늦게 궁을 빠져나가 시시가타니의 염불도장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들의 진지한 태도에 두 승려는 압도되어 쥬렌은 마츠무시의, 안라쿠는 스즈무시의 머리를 깎고 말았습니다.
며칠 뒤 순례에서 돌아온 상황은 사랑하던 그녀들이 여승이 되어 있어서, 그것이 쥬렌과 안라쿠의 짓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옛종파의 요구를 구실로 정토종을 금지했습니다. 호넨은 지금의 고치현 (高知県) 인 도사 (土佐) 로 귀양 보내졌고 쥬렌은 지금의 시가현 (滋賀県) 인 오미 (近江) 에서, 안라쿠는 교토 (京都) 에서 참수되었습니다. 마츠무시와 스즈무시 자매는 세토나이카이 (瀬戸内海) 에 있는 작은 섬에서 여생을 보냈고 각각 36살과 45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후 시시가타니의 염불도장은 폐허가 되었지만 호넨은 4 년간의 귀양에서 돌아와 그곳에 다시 절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안라쿠지입니다. 그 절 경내에는 마츠무시와 스즈무시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쥬렌과 안라쿠의 묘도 쓸쓸히 서 있는데 기념비에는 세상을 떠나기 앞서 남긴다는 사세구 (辞世句) 가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열반으로 간다는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제 운명을 모두 아미타불께 맡기겠습니다. (쥬렌)
-저는 작별 인사로 "나무아미타불" 이외에 아무말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안라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