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죠카와라마치 (四条河原町) 사거리에서 시죠대로 (四条大路) 를 따라 서쪽으로 약 200 m 떨어진 곳에 북쪽으로 뻗어 있는 상점가가 두 곳 있는데 신쿄고쿠도리 (新京極通) 와 데라마치도리 (寺町通) 입니다. 그 상점가 입구 바로 건너편에 간자덴샤 (冠者殿社) 라는 조그마한 신사가 있습니다. 그 신사에 모셔져 있는 신은 서일본에서는 세이몬바라이 (誓文払い) 로 영험하다고 합니다. 세이몬 (誓文) 은 ‘맹세문’ 이고, 바라이 (払い) 는 ‘액땜’ 이라는 의미인데 거짓 맹세로 인한 양심의 가책을 신 앞에 털어내는 풍습입니다.
에도시대 (江戸時代) (1603-1867) 부터 상인들과 기녀인 게이샤들은 신의 벌을 용서 받기 위하여 매년 10월20일이 되면 그 신사를 참배해 세이몬바라이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 상인들은 그날부터 상품을 아주 싸게 파는 행사를 했는데 그 형태가 바뀌어서 지금의 연말 세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상인들에게 있어 장사의 기본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도시대의 상인들은 이익에만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고객을 속이거나 폭리를 탐하는 경우도 많아서 그럴때마다 느낀 양심의 가책을 없앨 목적으로 간자덴샤의 신 앞에 세이몬바라이를 해서 고객이 입은 손실을 조금이라도 변상하려고 세일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도시대 말기 기온 (祇園) 이나 본토쵸 (先斗町) 지역의 게이샤들은 고객에게 연애편지를 많이 썼습니다. 물론 그녀들의 의지가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게에 오게하기 위한 주인의 강요로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들은 고객을 속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그런 편지를 쓴 후에 남아 있는 불쾌한 기분을 없애려고 그 신사에 참배해 세이몬바라이를 했습니다. 지금도 무곤마이리 (無言参り) 즉 무언참배로 그 풍습이 계속되어 오는데, 7월에 열리는 기온마츠리 (祇園祭) 기간인 7일 동안 매일 시죠대교 (四条大橋) 부터 간자덴샤까지 약 400m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가서 참배한 후에 다시 대교까지 무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옛부터 상인과 기녀가 세이몬바라이를 하기 위해 찾고 있는 간자덴샤의 신은 가마쿠라시대 (鎌倉時代) (1185-1333) 에 활약했던 도사노보 쇼슌 (土佐坊 昌俊) 으로 승려이면서 무사이기도 한 인물입니다. 어느날 미나모토노요리토모 (源 頼朝) 가 동생인 미나모토노요시츠네 (源 義経) 를 암살하기 위해 쇼슌을 교토 (京都) 로 가도록 명령했습니다. 1185년 쇼슌은 와카야마현 (和歌山県) 구마노지역 (熊野地域) 에 있는 신사 3곳을 방문한다는 거짓 구실로 당시의 수도인 가마쿠라 (鎌倉) 에서 교토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요시츠네를 쉽게 습격하기 위해서 그의 저택이 있는 동네 호리카와 (堀川) 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음모는 곧 탄로 났고 요시츠네와 그의 신하 벤케이 (弁慶) 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쇼슌은 각서를 써서 요시츠네를 절대 습격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음에도 맹세문을 쓴 그날로 그것을 어기고 요시츠네를 덮쳤지만 결국 다시 잡혀 목을 잘리고 말았습니다. 죽기 직전에 쇼슌은 거짓말로 각서를 쓴 것을 한탄하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본심이 아닌 각서를 쓰고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요!"
그런데 정말로 세이몬바라이가 필요한 시대는 지금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