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한전철 (京阪電車) 기요미즈-고죠 (清水五条) 역에서 3 번 출구로 나가면 서쪽으로 가모가와 (鴨川) 가 있습니다. 그 강에 있는 고죠오하시 (五条大橋) 라는 큰 다리를 건너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가와라마치-고죠 (河原町五条) 라는 교차로가 나옵니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돌아 약 400 m 더 가면 가와라마치도리 (河原町通) 가 마츠바라도리 (松原通) 와 교차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서쪽으로 약 200 m 떨어진 사거리 마츠바라후야쵸 (松原麩屋町) 에는 묘오인후도지 (明王院不動寺) 라는 작은 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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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은 서기 691 년에 당시 나라 (奈良) 에 본거지를 둔 법상종 (法相宗) 이라는 구불교의 종파에 속해 있는 도칸-다이토구 (道勧大徳) 라는 승려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카이 (空海) 라는 고승이 혼자만의 힘으로 부도명왕의 돌입상을 만들어 그 절에 안치한 후 그 절은 구카이가 시작한 진언종 (真言宗) 즉 밀교 (密教) 로 개종됐습니다. 일본 수도가 교토로 옮겨졌을 때 제 50 대 천황 간무텐노 (桓武天皇) 는 교토를 악령의 침입으로부터 막기 위해 도시 사방에 성스러운 바위를 놓고 그 밑에 불경을 묻었습니다. 남쪽을 수호하는 바위를 그 묘오인후도지에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절을 "미나미이와쿠라 (남쪽 바위자리)"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일본 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시진소오 (四神相応)" 즉 수도는 동서남북이 각각 특정한 신에 의해 지켜져야 하는데 북쪽은 겐부 (거북) 에 위해, 남쪽은 수자쿠 (새) 에 위해, 동쪽은 세이류 (용) 에 위해 그리고 서쪽은 뱟꼬 (호랑이) 에 위해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거북에게는 산이, 새에게는 연못이,용에게는 강이 그리고 호랑이에게는 대로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지리적으로 보면 교토는 북쪽에는 후나오카야마 (船岡山) 라는 산이, 남쪽에는 오구라이케 (巨椋池) 라는 연못이 (지금 간척되어 없어졌습니다), 동쪽에는 가모가와 (鴨川) 라는 강이 그리고 서쪽에는 산인도 (山陰道) 라는 대로가 있기 때문에 수도로 완벽한 장소라고 생각되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수도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 천황은 사방에 각각 절을 하나씩 골라 그곳에 성스러운 바위를 놓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신도 (神道/일본 고유의 민족신앙) 에서 방향의 신을 모시는 다이쇼군신사 (大将軍神社) 도 사방에 세워 불교와 신도의 모든 신들의 힘을 빌리고자 했습니다.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던 천황은 귀문 (鬼門) 이라는 피해야 하는 방향에 해당되는 동북쪽에 세키산젠인 (赤山禅院) 과 엔랴쿠지 (延暦寺) 라는 절을 세웠고 라조몬 (羅城門) 이라는 새로운 수도의 남대문 양쪽에는 도지 (東寺) 그리고 사이지 (西寺) 라는 절까지 지었다고 합니다.
서기 957 년 묘오인후도지는 가모가와의 홍수로 떠내려갔습니다. 그 뒤 절은 엔랴쿠지의 한 승려에 위해 일시적으로 재건되었지만 서기 1467 년에 발발한 오닌노란 (応仁乱) 이라는 내란으로 몹시 황폐해졌습니다. 서기 1586 년 도요토미히데요시 (豊臣秀吉) 가 일본을 통일한 후 교토에 주라쿠다이 (聚楽第) 라는 대저택을 세웠는데 그때 버려져 있던 이끼 낀 부동명왕의 석상이 발견되었고 히데요시는 즉시 그 석상을 정원의 장식으로 이용하려고 저택으로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부동명왕은 밤이 되자 정원에서 이상한 빛을 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신의 으스스한 행동에 시달리게 된 히데요시는 그것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그 신을 위해 작은 당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의 절 묘오인부도지가 생겼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