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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 맞는다는 문이 있는 간온지 (観音寺)  하가타지조 (歯形地蔵) 에서 센본 (千本)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약 1.5km쯤 가면 센본데미즈 (千本出水) 교차로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데미즈길을 따라 서쪽으로 약200 m더 가면 막다른 곳에 간온지 (観音寺) 라는 절의 작은 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문은 햐쿠타타키노몬 (百叩きの門) 이라고 불리는데 문 앞에서 백 번 맞는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간온지 주변 지역의 일곱 가지 불가사의의 하나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 문은 원래 당시의 권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웠던 후시미성 지하에 있었던 감옥의 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권력에 어울리게 그 문도 긴 녹나무의 두꺼운 판자로 호화롭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아즈치모모야마시대 (安土桃山時代) (1573-1603) 에는 외국과의 무역이 확대되었고 무사계급이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웅대하고 호화로운 문화의 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은 거듭된 전쟁과 성의 건설을 위한 강제노동 탓으로 어려운 생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교토 시내에는 도둑이나 거지가 급속하게 늘어나 날마다 질서가 문란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으로 후시미성의 감옥은 곧 죄인들로 가득찼습니다.  더 이상 죄인들을 가둘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죄가 무겁지 않은 사람들은 문 앞에서 백 대 때린 후 바로 석방시켰다고 합니다.

  그런 형벌이 단순히 생각하면 감옥에 가는 것보다 가벼워 보였지만, 피부가 터지거나 뼈가 부러지기도 했고 그 중에는 피를 토하면서 죽는 죄인들도 생길 만큼 혹독한 벌이었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굵은 막대기로 백 대나 맞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도요토미 일족 (豊臣一族) 이 몰락한 후 후시미성 (伏見城) 은 해체되었고, 지하에 있었던 감옥의 문은 간온지의 문으로 재이용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늦은 밤 간온지 앞을 지나가면 누군가가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절에 다가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진실을 찾아내려고 간온지의 한 스님이 밤을 세워 문을 지켜보았더니, 문에 달린 쪽문이 바람에 흔들려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며 ‘’으-으-으-‘’ 라는 소리를 내었는데 마치 고통스러워하면서 울고 있는 인간의 신음 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스님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이렇게 해석해서 말했습니다, "그 문은 깊이 후회를 하면서 죽은 죄인들의 영혼에 홀린 것이다 !"  그리고 그는 백일 동안 단식하면서 부처님께 빌었습니다.

  죽어간 죄인들이 그 스님의 기도 덕분에 열반에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소리는 그후로 어쨌든 두 번 다시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그 쪽문은 못을 박아 고정시켜져 있습니다.

흐느껴 울었다는 간오지 (観音寺) 의 문

판자가 벗겨지지 못하게 못으로 박혀진 간온지 (観音寺) 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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