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미즈데라 (清水寺) 를 향해 가는 길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야사카노토 (八坂の塔) 라는 탑쪽 길로 빠져나오면 그 탑 가까이에 고자질쟁이 벌레와 자제를 상징하는 원숭이 동상에 관한 이야기로 유명한 야사카고신도 (八坂庚申堂) 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기요미즈데라의 대문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의 바로 북쪽에 있는 작은 암자 앞에는 한 작은 돌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두건을 쓰고 턱받이를 한 귀여운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불상을 구비후리지조 (首振地蔵) 라고 부르는데 50 cm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그 불상은 다른 지장과 달리 머리가 360도로 돌아가는 지장입니다. 사람들이 뭔가 소원을 빌 때 그 불상의 머리를 원하는 대상이 있는 방향으로 돌려 놓고 기도하면 그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해서 유명합니다.
에도시대 (江戸時代) (1603-1867) 중기 교토 기온 (祇園) 의 게이샤 (芸者) 들이 다이코모치 (太鼓持) 라 불리는 한 남자를 그리워하며 불상 하나를 봉납했다고 합니다. 다이코모치는 북을 치는 사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손님에게 아첨하면서 잔치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라는 숨은 뜻도 있습니다.
그는 게이샤들과 사이좋게 일하며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대단해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사생활에 있어 사치가 심해 돈을 물 쓰듯 쓴 탓에 빚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가 되어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일본어로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상태를 ‘샤킹데 구비가 마와라 나이’ 라고 하는데 ‘빚이 많아서 어깨가 결려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빚 때문에 불쌍하게 죽고만 그 다이코모치의 명복을 빌며 게이샤들은 머리가 자유롭게 돌아가는 지장을 만들도록 하여 그 절에 봉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많은 참배자가 방문하게 됐고 그때마다 뭔가를 빌면서 예외없이 지장의 머리를 돌리는 바람에 목 부분이 마모되어 어느날 결국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현재 모셔져 있는 지장은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새로운 지장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런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석공도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불상을 만드는 것은 신을 모욕하는 짓과 똑같다고 생각해서 그런 지장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곤란한 상황에서 어처구니 없는 구실을 만들어 석공들을 다음과 같이 설득했습니다. "당신들이 지금부터 만들어야 하는 것은 불상이 아니다 ! 아첨쟁이인 다이코모치다 !" 그런 연유로 지금의 지장은 두건과 턱받이를 벗기면 정수리에는 까까머리가 아니라 옛날 일본의 무사들이 하던 머리 모양인 촌마게 (丁髷) 를, 가슴에는 지팡이가 아니라 부채를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귀엽다고도 하니 벗겨 놓은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