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한선 시치죠역 (京阪線七條駅) 근처에는 볼 만한 유적이 많이 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의 군대에게 죽음을 당했던 조선인의 귀나 코가 묻혀져 있는 무덤 뿐만 아니라 호코지 (方広寺) 에 있었던 제한된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일본에서 제일 크다는 유머러스한 대불 등입니다. 그 외에도 호코지에는 역사의 전환기가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호코지에 있는 종에 새겨진 글자입니다만, 그 글자가 너무나 작아서 다른 글자 사이에서 찾아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 글자는 흰색으로 덧칠을 해놓아 가까스로 읽을 수 있는데 [국가안강] 즉 国-家-安-康 입니다.
그 国-家-安-康 에서 만약 두번째 (家) 와 네번째 (康) 한자를 순서대로 나란히 놓으면 家-康 가 되고 일본어로 "이에야스" 라 발음된다고 합니다. 즉 당시 일본의 장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徳川家康) 의 이름과 발음이 같아지는 것입니다.
이에야스는 자기 자신의 이름 家(이에)-康(야스)를 세번째 한자 安 으로 잘라놓았다며 생트집을 잡아서 1614년 겨울에 그 종을 주조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의 아들인 히데요리 (秀頼) 를 대상으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에야스는 승리했지만 도요토미 일족이 서일본에서 아직도 영향력을 부리고 있는 것을 두려워하여 완전히 멸망시키기 위해 전력을 쏟았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자신을 지지하는 무사들과 같이 오사카성 (大阪城) 안에서 최후까지 버티면서 저항했지만, 1615년 여름 이에야스군에 굴복했고 히데요리는 그의 어머니인 요도기미 (淀君) 와 함께 할복자살했습니다. 도쿠가와 일족이 완전하게 일본을 지배하기 시작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1868 년의 메이지이신 (明治維新) 까지 약 250 년 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고, 전쟁없는 쇄국시대로 일본에서 독자적인 사회나 독특한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지금의 깡패들이 자주 쓰는 방법인 것 같지 않아요? 억지로 생트집을 잡는 것이……